영혼의 한중록


  영국 작가 마거릿 드래블이 사도세자의 빈이자 정조의 친모인 혜경궁 홍씨에 대해 쓴 소설이 있다. <The Red Queen>. 우리나라에는 <붉은 왕세자빈-영혼의 한중록>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이런 소설이 있다는 건 2005년 즈음 수업을 듣다가 처음 알았다. 얼마 전부터 조금씩 읽고 있다. 인간사 대개가 그렇듯이 아주 분명해 보이는 일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악의 경계, 진위의 경계가 점점 불분명해진다. 사도세자가 의대증(Hematiophobia : 옷을 제대로 갖추어 입지 못하고 수십번을 갈아 입고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을 마구 찢거나 하는 등의 정신병)을 비롯한 복합적인 정신 분열증으로 고통받았고, 그 마음의 병들은 영조의 극단적이고 강박적인 성격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영조는 유일한 아들이었던 사도세자를 심하게 대했다. 일찍이, 영조와 정치적으로 적대적인 쪽에 가까운 유모와 내관들의 손에 사도세자를 자라게 한 것부터 의아하다. 차림을 서투르게 하고 오는 날이면 크게 격노해서 공식석상에서조차 망신을 주었다. 사도세자와 말을 하고 난 뒤에는 더러운 기운을 씻는다 하여 입과 귀를 씻었다. 씻은 물은 미워하는 딸이 사는 곳의 담 너머로 버리곤 했다. 즐겁고 평화로운 공식석상에는 사도세자의 참석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각종 고문과 형벌이 행해지는 정사에는 필히 세자를 참석하게 했다. 미치지 않고 살 것인가. 읽을 수록 세자가 가엾고, 그의 아들인 정조가 가여웠다. 영조가 그런 노이로제적인 성격을 갖게 된 데에도 물론 이유는 있을 것이다. 그가 신분이 천한 어머니 슬하에서 태어났고, 경종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는 각종 의심 속에 집권하였으니 왕의 자리가 과연 오롯한 왕의 자리는 아니었을 일이다. 여튼 읽는 내내 두고두고 마음이 서늘해진다. 영광이 휘황할수록 그 뒤의 모욕과 어둠도 깊다. 행복의 조건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by rudikan | 2009/11/06 18:59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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